김흥기 '객원 논설위원 겸 지식산업센터 INNO 센터장'
최근 서울중앙지검은 제약업체 P사의 신약개발실장 등 생명공학 전문가 2명을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기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그동안 반도체, 자동차, 조선, 정보기술(IT) 분야에선 기술유출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했지만, 바이오기술(BT) 분야의 기술유출 사례로선 처음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같은 직장의 신약개발실장 인수인계자로서 서로 짜고 P사가 보유한 ‘중질환 치료용 단백질의 체세포 전송기술’(MITT) 관련 자료를 빼내 각종 사업계획서와 국가연구과제 신청서 작성 등에 활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MITT는 질병 치료에 효능이 있는 바이오 물질을 특정 물질과 결합해 질병 세포에 침투시키는 첨단 바이오기술로서 차세대 항암제 개발과 뇌질환 치료제, 줄기세포 연구 등 분야에서 유용한 기술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들은 ‘원천기술’ 보유자로 인정받아 국가적 보호를 받기 위해 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 중소기업청 등과 접촉하려 했고, 투자자를 모집해 새로운 바이오기술 회사를 차린 다음 MITT 관련 상품을 출시해 거액을 챙기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지식경제부는 2009년 6월 MITT를 ‘신성장 동력 스마트 프로젝트’로 선정하고 주관기업인 P사에 국비 78억여 원을 지급했다.
현행 '산기법'에 의하면 속칭 '산업기술'로서 국무총리실 산하 산업기술보호위원회에 의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받을 수도 있는 기술이다. 이렇게 중요한 기술이 다른 사람도 아닌 내부 개발자들에 의해 외부로 유출된 것이다.
기업에서의 연구개발 과정을 들여다보자. 정부에서 기업에 연구비를 지원할 경우도 연구개발 과정은 동일하다. 연구는 '기업부설연구소' 등 연구원 집단에 의해 수행된다. 문제는 이들이 어떤 자들인가에 있다.
통상 연구원들은 우리 사회와 해당 기업 안에서 평균이상의 학력과 지력을 갖춘 자들로서 자율적인 연구활동 속에 창의성을 발휘하므로 보안통제 등을 불편해한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연구결과물을 마치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간 기술유출 사건 등을 통해 파악된 바에 의하면 이공계 출신들로서 인문경상계 출신들에 비해 승진, 보수 등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즉, 오늘날 기업 경쟁력은 끊임없이 시장의 요구를 반영하고 선도하는 기술개발에서 비롯되는데 정작 이들에 대한 보다 섬세한 배려와 관리가 미흡한 것이 큰 문제인 것이다.
국정원 조사를 인용한 검찰의 발표에 의하면, 전·현직 직원에 의한 기술유출이 약 80%에 달한다. 기업의 자산과 취약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이번 P사 사례가 이에 속한다. 수사기관에서는 연구원들에게만 문제가 있다는 식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통계에 대해 어느 정도 균형감을 갖는 게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특허청 발표에 의하면 전체발명 중 종업원에 의한 직무발명이 약 80%이다. 종업원들이 회사를 먹여 살리는 것이다. 직원이 필요 없다면 왜 골치 아프게 인사관리와 내부감사까지 해 가면서 고용주가 종업원과 함께 사업을 하겠는가?
필자는 산업보안 분야에서 상기 통계가 인용되는 사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는 아마도 지적재산권 분야와 산업보안 분야의 종사자들이 상이한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람은 가장 큰 자산이면서 동시에 가장 큰 위협'이다. 연구원, 작업원, 협력업체 직원 모두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기업과 산업보안은 이들에 대해 올바른 시각을 갖고 관리하는 데 있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헌신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헌신을 선택하거나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는 있다. 이게 우선이다. 보안장비 구축, 정보보안 등 물리적, 기술적 보안은 그다음이다.
앞으로 정부자금 지원을 받아 기술개발을 진행하는 기업은 금번 P사 사태를 계기로 기술유출 등에 대비하는 보안시스템을 반드시 점검해야만 한다. 일각에서는 '국가 예산이 투입된 핵심기술 관리를 해당 기업 자율에만 맡기지 말고 정부가 나서 직접 보안강화를 지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필자는 이는 섣부른 지적이라고 본다. 기업현실을 잘 모르는 탁상공론이다. 오늘날 기업환경은 많이 변했다. 정부 돈 좀 받고 귀찮기보다는 웬만하면 혼자 힘으로 가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자칫 정부자금 잘못 썼다가 재수 없으면 사소한 일로 관계자들이 구속되기도 한다는 것을 기업은 잘 안다. 자율 속에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잘 지원함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따라서 필자는 회사가 직원들에게 영업비밀과 산업기술이 무엇인지 반드시 교육을 해야 함을 강조한다. '영업비밀과 산업기술 유출= 범죄= 처벌'임을 반드시 교육해야 한다. 연구원들은 '산업기술'이 법률용어임을 알지 못한다.
아무 말 않고 있다가 직원이 이직을 하려 하면 약점을 잡으려 하고 영업비밀 침해로 걸어버리는 사례는 없어야 한다. 연구원들은 자료를 소지하는 습관이 있는데 퇴사할 때, 회사와 불편한 일이 생겼을 때 이건 큰 문제가 된다. 회사 일은 절대 집으로 가져가지 말아야 한다. 빈손으로 출근하고 빈손으로 퇴근하는 것이다. 이게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연구원들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이들에 대한 제반 보상을 강화해줌이 중요하다. 장려금 성격의 보상에서 벗어나 실적보상을 확대하고 명확한 보상시스템을 마련하자.
또한, CEO의 관심과 격려 등 정서적보상과 연구활동의 자율성 보장, 조직구성의 자유 등 자율적 연구환경을 마련해 주자.
미국 최악의 내부 Spy Robert Hanssen을 기억하는가?
27년간 몸담고 있던 FBI의 각종 기밀, 심지어 미국의 핵전쟁 전략까지도 옛 소련과 러시아에 유출했던...각종 보안 인프라는 천천히 해도 늦지 않다. '적은 항상 내부에 있다.' 하지만, 그들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들을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는 국가와 기업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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