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기 '객원 논설위원 겸 지식산업센터 INNO 센터장'
최근 지난 2005년부터 5년간 추진되어온 사회적 책임 국제표준 (ISO26000 Guidance on Social Responsibility)이 최종 결정되어 발간되었다.
사회적 책임 국제표준은 조직 거버넌스, 인권, 노동, 환경, 공정운영, 소비자, 지역사회 등 7개 핵심과제에 대한 실행지침을 규정한 것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조직에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 SR)을 강조하는 첫 국제표준이다.
이는 조직이 모든 활동을 함에 있어서 소속된 사회에 이익이 되도록 해야 하는 책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비록 강제규정은 아니지만 국제사회의 자발적인 참여확대를 통한 시장에서의 강제를 유도하고 있다.
이에 정부에서는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을 중심으로 사회적 책임(SR)에 관한 인식 및 보급 확산을 위하여 교육과정을 실시하는 한편 ISO26000을 도입하는 기관이 사전진단을 통한 준비가 가능하도록 자가진단지표 개발을 추진 중에 있다. 또한 중기청에서는 한국생산성본부를 통해 중소기업 현실에 맞는 지표 개발을 준비 중에 있다.
이와 관련 국내 대다수 대기업은 이미 지속가능경영(sustainability management)을 경영의 새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였고 보고서를 발간해 선언하고 있다. 매출과 이익 등 재무적 성과뿐 아니라 윤리, 환경 등 비재무성과도 함께 고려하는 경영을 통해 기업의 가치를 향상시키고 사회에 봉사하려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기업은 Global Standard에 지속적으로 발맞춰 나가야 세계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음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사회적 책임 이슈 또한 이것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비록 한국표준협회가 올해 처음으로 지속가능경영 지수(KSI)를 개발해 조사한 120개 기업 가운데 한 곳도 100점 만점에 60점을 넘지 못했고 특히 일반인이 평가한 점수가 전체 평균 보다 2점 넘게 낮아 국내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이 아직 초보단계라는 것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래도 대기업은 좀 낫다. 문제는 중소기업이다.
이미 시장참여자들은 ISO26000 국제표준이 일종의 비관세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놓고 있다. 인권, 노동, 환경 등 선진국에 비해 열악한 조건일 수밖에 없는 국가의 기업들에게 시련이 예고되고 있다. 우리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은 수많은 중소기업과의 공급망 사슬(supply chain)을 통해 부품을 공급받고 제조공정을 아웃소싱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소기업이 ISO26000에서 요구하는 인권 등 7대 핵심과제와 37개 쟁점을 수행하면서 대기업에 부품, 제품,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을 것인가?
정부에서는 ISO26000 발간 등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글로벌 트렌드를 국가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삼아 우리 기업과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조직이 지속가능 경영이 이루어지도록 체질개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지당하다. 문제는 '과연 어떻게?' 이다.
대기업이 자본, 기술집약 산업이고 전반적으로 자신들의 마케팅 차원에서 SR을 잘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데 비해 중소기업은 노동집약 산업에 부품공급, 하청생산이며 SR은 엄두도 못 낼 형편인 게 현실이다.
이에 필자는 정부와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SR 환경개선을 전폭 지원해야 함을 지적하려 한다. 중소기업이 스스로의 노력과 비용으로 사회적 책임 여건을 조성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Bottom up 으로는 어렵다. 대기업이 식솔 챙기는 마음으로 Top down으로 이끌어줘야만 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중소기업이 잘 못 하면 결국 대기업에 그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 오랜 세월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이 개척한 기업과 국가 브랜드를 중소기업이 손상하지 않도록 대기업이 지원하고 나섬은 결국 합력하여 스스로를 돕는 일이 된다.
일각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거래관계 자체가 불공정한데 이런 관계를 통해 SR의 핵심과제중 하나인 '공정 관행'을 이루려는 시도 자체가 넌센스 라는 반응이 있는 게 사실이다.
홍보성 비주얼에만 초점을 맞춘 대기업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 대한 비판의견도 많다. 하도급 관계를 이용한 금품향응 수수를 넘어 개인 심부름까지 시키는 부도덕한 행태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업계의 불만이 팽배하다. 이런 현실에 중소기업 임직원은 모욕감과 좌절감을 느낀다. 이런 대기업의 행태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마땅하다.
한편, 필자는 정부의 역할을 기대한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매우 다양한 분포를 특징으로 하므로 업종, 규모, 성장단계 특성에 적절한 평가지표를 개발함이 요긴할 것이다. 한 기업에 타당한 지표가 다른 기업에는 부적절한 경우가 빈번할 것으로 예상한다. 유통, 생활용품, 전기전자, 화학 등 산업군별 특성도 반영됨이 필요하다.
그래야 중소기업이 스스로 자가진단을 통해 SR 환경을 개선해 나갈 수 있다. 컨설팅 지원을 받을 경우도 동일하다. 이러한 지표의 개발은 결국 정부 몫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지표를 개발하고,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SR활동을 지원하고 중소기업은 진단을 통해 노동, 환경 등 특히 선진국 소비자들이 관심 있는 이슈들에 대해 SR여건을 강화해나가야 할 것이다.
종래 기업은 기술개발에 힘써 좋은 제품 만들어 시장에 잘 내다 팔고 돈 만잘 벌면 되었다. 정부의 역할도 R&D지원과 자금, 마케팅 지원이 대세였다. 이제는 기술, 제품을 둘러싼 전반적인 기업여건을 국제기준에 맞춰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SR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보다 큰 관심과 지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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