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해교통대학교 고희령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 후, 중국에선 한동안 박대통령의 칭화대 연설이 화제가 되었다. 평소 중국통으로 불릴 만큼 중국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던 건 많은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었지만 5분 가량의 중국어 연설은 중국에 대한 애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한국이 한중관계를 얼마나 중요시하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특히 중국 내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대통령을 비교하면서 한국 외교가 기존의 친미 성향에서 벗어나 친중계 인사들의 입지가 강화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예측은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 스스로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G2로 급부상한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선 굳건한 안보환경이 확립되어야 한다는 판단 아래 군의 현대화 등 군사분야에서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파워의 상대적인 감소와 중국으로 대표되는 아시아국가의 굴기는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말을 탄생시키면서 포스트 미국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러한 전 세계적 차원의 세력전이 현상은 지역 차원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는 9•11테러 이후 미국의 글로벌 안보전략 변화에 따른 해외주둔 미군의 재조정과 연계되면서 한미동맹은 미일동맹과 함께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시키는 일종의 카드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아시아 회귀 정책을 선포하면서 최근 몇 년새 아시아 지역 내 패권 다툼은 치열하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면서 중국과의 거리적 근접성으로 인해 강대국 간의 경쟁에 휘말릴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현존하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은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를 지키는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그 중요성이 인식되어 왔고 한미관계를 나타내는 하나의 척도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2004년 이후 중국이 한국 최대 무역국으로 자리잡으면서 수교 2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양국 관계는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북핵문제와 통일문제를 논의하는데 있어 중국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는 지금, 한국정부는 한중관계를 실질적 협력관계로 격상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외교 축은 일부 학자들의 견해처럼 중국으로 그 무게가 실리고 있는 것일까? 그 판가름의 척도로 국가 정상들간의 회담 횟수를 들 수 있다. 정상외교는 국가가 형성되면서부터 존재하였지만 한국의 경우는 2007년 외교백서를 통해 정상외교의 의의를 처음으로 언급하면서 그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정상외교는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가 비전과 철학을 바탕으로 전 국가 역량을 결집하면서 국가의 외교목표를 수행해 나가는 외교방식으로서 국가적인 외교정책의 비전과 목표를 대내외에 제시하여 국가의 품격을 높이고 새롭게 국익을 창출하는 유용한 수단이다. 비록 구체적인 사항은 실무회담을 통해 진행되지만 양국 관계의 로드맵을 제시하는 등 큰 틀은 정상회담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정상간의 상호방문 횟수나 정상회담 횟수는 양국 간의 교류가 얼마나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된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의 한미와 한중 간 양국 정상의 정상회담 수를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반미세력이라 평가되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친미세력이라 평가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미국 정상과의 정상회담 횟수는 각각 9차례와 11차례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에서 서울 G20정상회의와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렸던 점을 감안하면 두 대통령은 같은 횟수를 기록하게 된다. 하지만 중국과의 정상급 회담을 보면 각각 13회와 25회로 친미성향이라 알려졌던 이 전 대통령이 중국과 더 활발한 교류를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정상회담 횟수로만 양국관계와 한국의 외교방향을 평가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양국간 회담 내용을 살펴보면 FTA체결 및 북핵문제의 해결 등은 한국과 양국 정상 간의 공통 화제이지만 한미 정상회담이 한미동맹의 재조정 및 양국 관계의 심화 발전 등 주로 안보, 정치, 경제 등 모든 영역의 안건에 대해 논의하는데 반해 한중 정상회담은 군사안보 등 민감한 분야에 있어선 아직까지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 하고 있어 양국의 실질적 관계 발전에 주로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따라서 정상회담 횟수에선 한국과 중국 간의 교류가 활발한 듯 보이지만 실상 한국 외교의 주요 방향은 한미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여느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첫 공식방문지로 미국을 선택하였지만 과거 대통령들이 두번째 방문지로 일본을 택했던 것과 달리 박 대통령은 중국을 두번째로 국빈 방문하였다. 한국외교에 있어 중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의 경제와 군사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앞으로 중국은 한국에게 있어 중요한 협력파트너이자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출범 2년째를 맞고 있는 박근혜정부의 외교에 대한 평가는 비교적 양호하다. 미국과 중국 양 국가에 비교적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었다는 평가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지난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중국과 불편한 사안에 대해 얼굴 붉히기를 피해서는 안 된다. 양국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민감한 사안에 있어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하고 우리의 입장을 피력하여 협력을 이끌어내야만 양국관계를 한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다. 한국은 현재 중미 사이에서 선택의 고뇌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 한미관계가 우리의 유일한 외교 수단이었다면 지금은 하나의 선택지가 더 늘어난 것이다. 칭화대 연설에서 박 대통령이 보여줬던 진정성 있는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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