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기 '객원논설위원 겸 지식산업센터 INNO 센터장'
최근 괴상한 제도가 하나 등장했다. 바로 ‘준법지원인(遵法支援人)’이라는 제도이다. 말인즉 법을 준수토록 지원하는 사람들이다. 기업이 법을 잘 지키지 않으니 법을 잘 아는 변호사들이 기업에 상근하면서 준법을 지원하는 제도라고 한다.
일정규모의 상장회사들이 1명 이상의 법률가를 고용해 회사경영진이나 임직원의 준법경영 여부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기도록 상법 개정안이 마련된 것이다. 변호사와 5년 이상의 법학교수 등이 바로 자격 있는 법률 전문가라고 한다. 임기 3년짜리 준법지원인 하려고 할 교수는 별반 없어 보인다. 결국, 변호사 일자리 늘리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일정규모의 상장회사에는 법률부서가 잘 마련되어 있다. 감사, 사외이사 심지어 준법감시인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이다. 과연 이러한 기업들이 법을 잘 몰라서, 감시자가 없어서 법을 어길까? 최근 모 은행사태에서 보듯, 외부 사외이사들마저 내부자와 함께 편 갈라서 이해 줄서기를 하지 않던가? 하물며 월급쟁이 준법지원인 1명이 기업의 준법경영을 감시한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기업은 왜 비싼 상근 변호사를 강제로 떠맡아야 하는가?
주요 일간지들은 이미 기사와 사설, 칼럼을 통해 준법지원인이 변호사 일자리 만들어 주기라면서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필자도 이에 동감한다. 하지만, 변호사 또는 법조인들만 비난함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필자는 문제는 우리 국회에 있으며, 보다 근원적으로는 국회를 제대로 감시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우리 시민들에게 잘못이 있다고 본다.
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다양한 이익집단들이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이들 간의 대립되는 이익을 대표하고 조정하여 사회적 자원을 배분함이 필요하다. 그들이 바로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다.
이렇게 보면 변호사들이 자신들의 직역 이익을 추구하려 함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지만, 국민의 편에 서서 일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자신들 배 채우고, 우리 사회의 힘 있는 사람들 편에 서서 일한다면 국민은 정말 분통이 터진다.
준법지원인은 지난 2009년 국회의원 33명이 윤리경영을 강화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면서 발의했다고 한다. 시끄러우니 가만두었다가 지난달 10일 다른 개정안과 함께 섞여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에서 바로 통과되었다.
오늘날 기업경쟁력은 바로 국가경쟁력인바, 지속가능한 기업경영을 위해 기업 내부뿐 아니라 외부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기업과 소통하는 기업의 사회적책임이 중시되는 시대에, 투명경영, 윤리경영을 도모하겠다는데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회 내부의 법조인과 국회 외부의 법조인이 한통속이 되어 국민을 무시하고 서민을 농락하는 자신들만의 잔치를 벌여서는 곤란하다.
기업에 준법지원인을 보내기 위해, 이들이 탈법조장인(脫法助長人)의 역할을 함께한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국회는 지난해 세비를 인상하고, 전직 의원들에게까지 일종의 평생 연금으로 매월 120만 원의 생계비를 지원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금년부터는 가족수당에 자녀학자금 수당까지도 받아갈 수 있게 했다.
청목회 사건으로 재판 중인 의원 빼내기 위해 정치자금법 개정안도 상임위에 상정했다. 당선무효기준을 벌금 100만 원 이상에서 300만 원 이상으로 바꾸도록 공직선거법 개정안도 마련했다. 여기에 준법지원인까지. 모두가 국회의원들 ‘혼자 힘으로’ 스스로 한 일들이다.
‘존경하는 동료의원’은 있어도, ‘존경하는 국민’은 없다. 도대체 누가 주인이고 누가 대리인인가?
오늘날 신행정 국가는 국가의 주요 정책결정권한이 행정부에서 국회로, 중앙에서 지방으로 이전됨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제 국회는 예전의 핫바지 국회가 아니다. 바쁜 장관 불러서 세워 놓고 2시간 이상을 벌세우는 곳이 바로 국회이다. 어떤 법이든 맘만 먹으면 통과시킬 수 있다. 날치기면 어떠랴.
국민에게는 4년 주기로 선거 때만 잠깐 몸을 낮추면 된다. 국민들은 입에 풀칠하고 먹고살기 바쁘다. 또 금방 잊으니까.
우리나라 국회는 본회의 중심이 아니라 상임위원회 중심이다. 법안은 상임위에서 사실 운명이 결판난다. 이런 점에서 국회는 상임위의 법안 상정내용을 국민에게 즉시 제대로 알려야 한다. 사실 현행 국회법에 이미 이런 공고규정이 있다. 시행령이 없어 사문화된 채.
법을 만드는 국회 스스로 바꾸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민이 감시해야 한다. 어떤 법이 상정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다양한 이해가 조정되는지, 국회의원이 내 밥그릇을 빼앗아 가지 않는지 그 출발점에서부터 지켜봐야만 한다. 국회의원 세비는 모두 국민이 내는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미 법이 통과되고 나면, 정부에선 할 게 별로 없다. 준법지원인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이 공정사회 취지에 맞지 않아도 거부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보니 시행령을 통해 준법감시인을 둬야 하는 기업을 줄이는 정도라고 한다.
적용 대상기업을 줄이고, 자격요건을 보다 널리 개방하기를 제안한다. 변호사만 법을 잘 아는 게 아니다. 법만이 능사가 아니다. 지속가능경영(Sustainability Management)과 윤리경영을 위해 기업에 도움이 될 전문가, 위기관리 전문가, 상담치료전문가 등 보다 큰 틀에서 기업이 건강하게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을 다하도록 유도함이 준법지원인 1명을 두는 것 보다 시급하고 절실해 보인다.
다음기사 : 
